<사랑의 헛수고>는 ‘낭만 희극(Romantic Comedies)’으로 분류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의 비교적 초기 작품으로 생각되는 이 극은 1594∼1595년 또는 1597∼1598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줄거리상으로는 다소 가볍고, 대단한 내용은 없어 보인다. 나바라 왕 페르디난드는 세 명의 동문수학하는 친구이자 신하들에게 앞으로 3년간 속세의 모든 욕망을 끊고 학문에만 전념해 세상의 귀감이 될 것을 제안하고 세 명의 신하는 왕과 굳은 맹세를 한다. 그러나 때마침 프랑스의 공주가 세 명의 시녀들을 거느리고 방문하자 네 명의 남자는 각각 그녀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체면 때문에 자신들의 마음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도록 꾸며 대며 몰래 각자 마음에 둔 여성들에게 구애하지만 결국에는 다 들통이 나고 만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공주 일행에게 매우 불성실하게 비친다. 프랑스 왕이 죽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공주 일행은 구혼자 네 사람에게 지시한 것들을 지키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 이상의 주요 플롯에 서민들의 행동은 부플롯으로 적절하게 섞여 들어가면서 왕이 선포한 금욕령의 허구를 드러낸다. 또 여기에 코믹한 효과를 내는과장된 수사와 언어의 혼용, 언어의 현학성과 심한 오용이 왕과 세 명의 귀족들의 말장난을 왜곡된 거울이 되어 비추는 것이다.
놀이의 세계
전형적인 희극은 대체로 오해와 시련의 과정을 거쳐서 그것이 해결되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짝을 이루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사랑의 헛수고>는 열렬한 사랑의 맹세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단순 논리로 가지 않는다. 사랑의 맹세가 열렬해질수록 오히려 남성들의 성실성 결여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 극은 ‘신의와 사랑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향하지 않는다. 이 극에서는 여성들이 제3의 눈이 되어 남자들을 바라본다. 남자들의 성격적 결점은 어리석음으로, 여성들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혜안을 가진 존재로 드러난다. 남자들이 아무리 야단스럽게 맹세를 해도 결국 그들의 사랑 맹세는 헛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잠정적인 놀이 규칙을 따라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놀이의 세계는 규칙이 깨어지면 와해될 뿐이다. 연극 역시 일시적 약속의 세계 속에서 존재하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그 세계와 함께 사라져 버리게 된다. 왕을 비롯한 세 명의 귀족들과 프랑스 공주와 세 명의 여성이 벌이는 사랑의 계략 극의 절정은 바로 극중극(play-within-the-play)인 <아홉 영웅들>을 관람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 ‘극중극’이 펼쳐 대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프랑스 왕의 서거 소식에 의해서다. 세계의 전환을 명백하게 보여 준다. 여흥과 계략의 세계가 끝나면 사랑은 이제 야단스러운 말장난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리고 그들은 진실성을 시험받는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말’이란 사람의 입을 떠나는 순간 헛것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왕과 세 명의 귀족이 벌였던 연극 세계는 프랑스 왕의 죽음으로 닫혀 버리고, 그들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벌였던 ‘말장난’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만다. 극의 제목에서 ‘lost’는 바로 ‘헛것이 되어 버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극은 아마도 셰익스피어가 항상 자신의 극 중에서 되풀이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이 세계는 무대(All the World’s Stage)”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한, 가벼움 속에 내재된 삶에 대한 매우 진지한 접근이라 해야 할 것이다.